OCT 2018 / WORKS
INTRODUCTION, PART I
[CONTENTS]
- 아라비카 & 로부스타 ARABICA AND ROBUSTA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커피'의 정의는 '코페아 아라비카(Coffea Arabica) 커피나무의 열매'라고 할 수 있다. 아라비카는 매년 생산되는 커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남회귀선과 북회귀선 사이에 위치한 수십 개의 나라에서 재배된다. 하지만...
아라비카 & 로부스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커피'의 정의는 '코페아 아라비카(Coffea Arabica) 커피나무의 열매'라고 할 수 있다. 아라비카는 매년 생산되는 커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남회귀선과 북회귀선 사이에 위치한 수십 개의 나라에서 재배된다. 하지만 실제로 원종이 아라비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 120개가 넘는 커피품종이 확인되었으며, 아라비카 말고도 대량으로 재배되는 원종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코페아 카네포라(Coffea Canephora)'라는 학명을 가진 로부스타다.
로부스타는 원종의 특징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19세기 말 벨기에령 콩고(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발견된 로부스타는 상업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기존의 아라비카 재배지보다 고도가 낮은 온도가 높은 지역에서도 재배와 수확이 가능했고, 병충해 내성도 우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로부스타는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생산되고 있으며, 비교적 재배가 용이해 생산비용 또한 저렴하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커피 맛이 그리 뛰어나지 못하다는 점이다.
혹자는 제대로 만든 로부스타 커피가 어설픈 아라비카 커피보다 맛이 좋다는 그럴싸한 주장을 할지도 모르겠다.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로부스타 커피가 맛이 좋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커피 맛을 글로 명확하게 표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필자는 로부스타 커피가 나무향(woody)과 고무냄새(rubby)를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로부스타 커피는 대게 산미가 거의 없고, 바디감(body)과 마우스필(mouthfeel)이 무겁다. 물론 로부스타도 퀄리티에 따라 등급이 나뉘고 고품질의 로부스타가 생산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커피의 원료로 사용되었던 로부스타는 이제 생산량의 대부분이 제조공장으로 옮겨져 인스턴트커피를 만드는데 쓰이고 있는 처량한 신세다.
인스턴트 커피업계의 입장에서는 커피의 맛보다 가격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인스턴트커피는 주로 세계의 다양한 페스트푸드 프랜차이즈에서 판매되고 있는 추세다. 로부스타는 세계 원두 생산량의 40% 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 비율은 가격과 수요의 변동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국제커피 가격이 상승하면 거대 다국적 커피기업들이 아라비카를 대체할 저렴한 생두를 찾게 되어 로부스타의 생산량이 증가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과거 로스팅 회사들이 자사의 블렌드에 들어가는 아라비카를 로부스타로 바꿨더니 커피 소비가 줄었다는 것이다. 커피 향미의 변화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아라비카 보다 두 배가 넘게 들어있는 로부스타의 카페인 함량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대형 로스팅 회사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할 경우 소비자들은 그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거나, 최소한 커피를 마시는 습관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유전학으로 풀어보는 커피 이야기
커피업계는 로부스타를 아라비카의 열성쯤으로 여겨왔으나 최근 흥미로운 유전학적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과학자들이 커피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분석했더니 두 품종이 친척관계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들은 오히려 로부스타가 아라비카의 부모뻘이라고 주장했다. 아라비카는 남수단 지역(추정)에서 로부스타와 '코페아 유지노이스(Coffea Euginoides)'가 교배하여 생겨났으며, 이후 널리 퍼져 커피의 고향인 에티오피아에서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큐 왕립식물원이 지금까지 확인한 커피품종은 약 129가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대체로 우리가 알고 있는 커피나무나 생두와는 전혀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마다가스카가 원산지인 품종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남아시아 지역이나 호주에서 재배되는 품종들도 있다. 이 품종들은 지금 당장은 상업적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수확이 가능한 커피품종의 유전적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커피업계의 우려에 따라 과학자들의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커피의 유전적 구성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적으로 재배, 수확되고 있는 커피는 모두 같은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내려온 품종들이다. 그만큼 커피는 유전적 구성이 단순해 세계의 커피 생산은 항상 커다란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1860년대와 1870년대에 유럽 일대의 수많은 포도나무를 황폐화시켜 와인업계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던 포도나무 뿌리진디(Phylloxera, 필록세라)처럼 커피나무도 병충해로 인한 피해가 언제라도 확산될 수 있다는 얘기다.